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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칼럼]전주 이씨 조선, '군자의 나라'인가? '수탈과 위선의 지옥'  인가?

 

1. 이자벨라 버드 비숍의 목격: ‘게으른 조선인’은 착취적 시스템의 생존 전략이었다

 

19세기 말, 영국인 여성 탐험가 이자벨라 버드 비숍(Isabella Lucy Bird Bishop)은 조선을 방문한 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을 남겼다. 이 책은 단순히 이국적인 풍물을 기록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것은 도덕이라는 이름의 위선이 어떻게 한 민족의 근면성을 말살하고 경제적 숨통을 조였는지에 대한 처절한 고발장이다.

 

비숍은 조선 땅에서 백성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다음과 같이 원전에서 묘사한다.

 

"The Korean is a man who, having no security for his earnings, has no incentive to work. If he makes money by extra industry, it is 'squeezed' from him by the officials and the 'Yangs-bans'."

 

(조선인은 자신의 수입에 대한 안전이 보장되지 않기에 일할 의욕이 없는 사람이다. 만약 그가 남다른 근면함으로 돈을 번다면, 관리들과 ‘양반’들이 그것을 짜내(수탈해) 갈 것이다.)

 

이 문장은 조선 후기의 경제적 불능 상태가 백성의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수탈의 구조’ 때문이었음을 명확히 짚어낸다.

 

당시 양반 계급은 성리학적 도덕주의를 앞세워 부의 축적을 ‘천박한 탐욕’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청빈’은 백성들에게나 강요되는 것이었을 뿐, 자신들은 매관매직과 가혹한 세금, 그리고 근거 없는 죄목을 씌워 백성의 재산을 갈취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비숍의 통찰이 더욱 빛을 발하는 대목은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을 목격했을 때다. 그녀는 그곳에서 충격적인 반전을 경험한다.

 

"In the Primorsk [Russian Maritime Province] he is a different being... He is industrious, frugal, and prosperous... It is not that he is a different man, but that he is under a different government." (연해주에서의 그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그는 부지런하고 절약하며 번창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다른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다른 정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착취의 주체인 양반 계급이 사라지자, ‘게으른 조선인’은 돌연 ‘근면한 생산자’로 변모했다. 이는 게으름이 민족성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체제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었음을 증명한다.

 

21세기의 양반, 오늘날의 좌파 정치인들

 

놀랍게도 130년 전 비숍이 목격했던 조선의 풍경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일부 정치적 상황과 기묘하게 닮아 있다. 도덕을 독점한 듯 행동하며 부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정작 자신들은 권력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챙기는 현대판 양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소위 좌파 정치인들은 입으로는 ‘평등’과 ‘분배’, ‘공공의 선’을 외친다. 그들은 기업과 자산가들을 향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징벌적 과세와 규제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는 도덕의 이면에는 조선 시대 양반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실하게 부를 일구는 시민들의 의욕을 꺾고 국가 권력에 의존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들은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며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살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자녀는 특권적 교육을 받게 하고,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이익을 챙기며, 권력의 언저리에서 '끼리끼리' 이권을 독점한다.

 

이는 비숍이 비판했던, 백성들에게는 금욕을 강요하고 자신들은 수탈을 일삼던 양반들의 **‘위선적 도덕주의’**와 하등 다를 바 없다.

 

성공한 자를 죄인 취급하고, 정당한 부의 축적을 가로막는 사회에서 시민들은 다시 ‘게으름’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일해도 세금으로 뜯기고, 규제로 막히며, 정치적 올바름(PC)이라는 잣대로 난도질당한다면 누가 창의성을 발휘하겠는가?

 

비숍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한 민족의 번영은 그들의 기질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고 사유재산이 보호받는 시스템’**에 달려 있다고 말이다.

 

위선적인 도덕을 무기로 권력을 휘두르는 ‘현대판 양반’들이 득세하는 한, 우리는 다시금 비숍이 보았던 그 무기력한 조선의 그늘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도덕의 탈을 쓴 수탈의 정치를 거부하고, 근면함이 보상받는 진정한 자유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2. 위선의 도덕주의, 그 추악한 대물림: 조선 양반과 현대 좌파의 이중성

 

이자벨라 버드 비숍이 목격한 조선의 비극은 비단 경제적 수탈에만 그치지 않았다.

 

경제를 마비시킨 ‘도덕의 무기화’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과 윤리 영역인 ‘성(性)’에 있어서도 가공할 만한 이중성을 띠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일부 권력자들의 성적 일탈은 130년 전 양반들이 보여준 그 위선적 행태의 완벽한 재림이다.

 

남녀칠세부동석 뒤에 숨겨진 추악한 성 착취

 

조선 성리학은 ‘예(禮)’를 숭상하며 백성들에게 ‘남녀칠세부동석’과 엄격한 정조 관념을 강요했다. 상민과 노비들에게는 가혹할 정도의 도덕적 굴레를 씌워 삶을 통제했지만, 정작 그 규율을 만든 양반 계급은 그 울타리 밖에서 무소불위의 성적 특권을 누렸다.

 

비숍은 조선의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격리되어 있음을 관찰했지만, 동시에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부리는 노비와 기생들의 처지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양반들은 어린 노비의 성을 거리낌 없이 착취했고, 첩과 기생을 거느리는 것을 마치 풍류이자 권위인 양 과시했다. 겉으로는 엄숙한 도덕가인 척하며 뒷방에서는 약자의 성을 유린하는 이중 구조, 이것이 조선을 지탱하던 성리학적 ‘도덕의 민낯’이었다.

 

‘성인지 감수성’의 외침 뒤에 숨겨진 권력형 성범죄

 

이러한 위선적 DNA는 놀랍게도 현재 우리 사회의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좌파 정치인들에게서 그대로 발견된다. 그들은 평소 "여성 인권"과 "성평등", "성인지 감수성"을 전매특허처럼 외치며 자신들만이 도덕적 우위에 있는 양 행동해 왔다. 상대 진영을 향해서는 '마초'라 비난하며 서슬 퍼런 도덕적 잣대를 들이댔다.

 

그러나 그 화려한 수사 뒤에서 벌어진 일들은 가히 충격적이다. 자신을 보좌하는 여성 보좌관이나 부하 직원들을 향해 저지른 권력형 성범죄와 일탈은 조선 시대 양반들이 노비에게 행했던 착취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비숍이 묘사한 양반들이 "재물은 악덕"이라면서 백성의 피를 빨았듯이, 현대의 이들은 "여성 인권"을 외치면서 자신들의 뒤틀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약자의 인권을 짓밟았다.

 

도덕을 사유화한 자들의 필연적 타락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그것은 그들이 도덕을 '보편적 가치'가 아닌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기 때문이다.

조선의 양반들에게 성리학이 지배 계급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갑옷이었듯, 현대 좌파 정치인들에게 여성 인권과 도덕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방패였다.

 

비숍이 강조했듯, 연해주의 조선인들이 정당한 법치 아래에서 근면한 인간으로 거듭난 것처럼, 진정한 도덕은 강요된 훈계나 위선적인 구호가 아니라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막는 엄격한 감시와 법치 속에서 피어난다.

 

맺음말: 21세기 양반들에게 고함

 

비숍이 본 조선은 겉으로는 '군자의 나라'였으나 속으로는 '수탈과 위선의 지옥'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그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 도덕적 우월감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온 이들이 보여준 추악한 이중성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더 이상 "말뿐인 도덕"에 속아서는 안 된다. 권력을 쥔 자가 스스로를 도덕적 화신으로 포장할 때, 그 이면에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재산이나 성이 착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비숍의 통찰은 130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현대판 양반들의 위선적 성 생활과 일탈은 그들이 외치던 도덕이 사실은 자신들의 특권을 가리기 위한 ‘분칠’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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