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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칼럼] 성인(聖人)의 가면 뒤에 숨겨진 추문: 《송사》가 기록한 주희의 '십죄(十罪)'

 

남송 시대, 도덕과 천리(天理)의 화신으로 추앙받던 주희(朱熹)는 인생 말년에 치명적인 탄핵을 받고 실각합니다. 당시 감찰어사 **심계조(沈繼祖)**가 올린 상소문은 현대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줍니다.

 

특히 주희의 장남 주숙(朱塾)이 요절하여 홀로 남겨진 과부 며느리가 시아버지에 의해 임신했다는 대목은 유교적 가치관을 뿌리째 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다음은 《송사(宋史)》 및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심계조의 탄핵 원문과 그 현대적 해석입니다.

 


📜 심계조의 탄핵 상소: 주희의 십죄(十罪) 원문 및 번역

 

심계조는 주희의 죄상을 열 가지로 분류하여 그를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위선자로 규정했습니다.

 

1. 불효(不孝)와 불충(不忠)

"不忠於君, 不孝於親." (임금에게 충성하지 않았으며,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았다.)

  • 해설: 어머니의 장례를 법도에 맞지 않게 치렀으며, 학문을 구실로 임금을 경시했다는 비판입니다.

 

2. 가짜 학문으로 세상을 속임 (위학, 僞學)

"倡爲僞學, 惑世誣民." (가짜 학문을 창시하여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을 속였다.)

  • 해설: 그의 성리학이 도덕적 수양보다는 권력 획득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3. 비구니를 유혹하여 첩으로 삼음 (유인비구니, 誘引尼姑)

"誘引尼姑二人以為寵妾, 每登舟則與之同載." (비구니 두 명을 유인하여 총애하는 첩으로 삼았으며, 배에 오를 때마다 그들을 함께 태우고 다녔다.)

  • 해설: 금욕을 강조하던 그가 종교인인 비구니를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폭로한 것입니다.

 

4. 며느리와의 간통 및 임신 (儿婦不貞)

"甚至家門不肅, 簉室不法, 遂使兒婦不貞, 孕及十月." (심지어 집안 단속을 못 하고 첩들이 법도를 어기더니, 마침내 며느리마저 정숙하지 못하게 하여 임신한 지 열 달에 이르게 하였다.)

  • 해설: 이 칼럼의 핵심 대목입니다. 아들이 죽어 과부가 된 며느리를 시아버지가 범하여 자식까지 갖게 했다는 지적으로, 주희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5. 관직에서의 태만 (居官不修職事)

"散遣家屬, 居官不修職事." (가족들을 흩어 보내고, 관직에 있으면서도 직무를 돌보지 않았다.)

  • 해설: 공직자로서의 책임감보다 사적인 욕망과 학파 세력 확장에만 몰두했다는 비난입니다.

 

6. 백성의 재물을 갈취함 (탐람, 貪婪)

"貪婪無厭, 虐害小民." (탐욕이 끝이 없어서 가난한 백성들을 학대하고 해쳤다.)

  • 해설: 지방관 재직 시절 공금을 유용하거나 백성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웠다는 경제적 비리입니다.

 

7. 임금을 업신여김 (기군망상, 欺君罔上)

"欺君罔上, 傲慢無禮." (임금을 속이고 업신여겼으며, 오만하고 무례하였다.)

 

8. 사사로운 당파를 조직함 (결당영사, 結黨營私)

"結連黨, 排斥異己." (당파를 결성하여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였다.)

 

9. 괴이한 학설로 민심을 어지럽힘 (괴력난신, 怪力亂神)

"妖言惑衆, 亂道敗德." (요사스러운 말로 대중을 현혹하고 도리를 어지럽히며 덕을 패퇴시켰다.)

 

10.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림 (불법, 不法)

"不遵法度, 肆意妄行." (나라의 법도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망령되게 행동하였다.)


🧐 칼럼니스트의 시선: 위선인가, 정치적 희생인가?

 

요약 1: '임신 10개월'의 구체성이 갖는 파괴력

 

심계조의 탄핵문에서 가장 무서운 점은 **'임신 10개월(孕及十月)'**이라는 구체적인 물리적 증거를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죽은 시점과 며느리의 출산 예정일을 대조하여, 그 범인이 집안의 어른인 주희임을 확정 지으려는 의도가 다분합니다. 이는 단순한 소문을 넘어 주희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한 정교한 공격이었습니다.

 

요약 2: 역사적 기록의 양면성

 

비록 이 탄핵이 당시 권력자 한탁주(韓侂冑) 세력의 정치적 모략이라는 견해가 있지만, 정사인 《송사》에 이토록 구체적인 죄목이 기록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주희라는 인물이 당대에도 얼마나 극심한 도덕적 논란의 중심에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주희는 이 상소 이후 모든 관직을 박탈당하고 그가 정립한 학문은 '위학(僞學)'으로 낙인찍혀 금지되었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개처럼 기어서라도 살려달라"는 비굴한 사죄문을 올렸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그가 설파했던 '인욕을 제거하라'는 가르침과 대비되어 더욱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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