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 타이쿤
- 조회 수 3
[팩트칼럼] 조작된 성역, 조선의 역사 세탁: 주희의 추문은 어떻게 ‘성자의 고난’이 되었나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주희의 결점은 곧 자신들이 신봉하는 세계관의 붕괴를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주희의 추문을 ‘진실’로서 마주하기보다, 간신들의 모함에 고난받는 성인의 서사로 재포장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것은 지성의 눈을 가린 채 진행된 거대한 사상적 세뇌였습니다.
Ⅰ. 이황과 이이: 주희를 ‘무오류의 존재’로 박제하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조선 성리학의 양대 산맥이지만, 주희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일치했습니다. 그들에게 주희의 텍스트는 곧 하늘의 계시였고, 주희의 삶은 털끝만큼의 오점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1. 퇴계 이황의 '주자전서' 숭배와 기록 선별
이황은 주희의 편지와 저작을 모아 《주자서절요》를 편찬하며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희의 위선이나 사생활적 결함이 담긴 기록들은 ‘불순한 당파의 모함’으로 치부되어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
[조선 사대부의 논리] "朱子, 聖人也. 聖人豈有此等事? 凡此皆 奸臣之誣也."
-
[한글 번역] "주자는 성인이다. 성인이 어찌 이런 일을 저질렀겠는가? 무릇 이러한 기록들은 모두 간신들의 모함일 뿐이다."
Ⅱ. '경원당금(慶元黨禁)'의 재해석: 추문을 고난으로 둔갑시키다
심계조의 탄핵으로 주희가 실각한 '경원당금' 사건은 조선에서 '도학(道學)이 수난을 당한 비극'으로 미화되었습니다. 며느리 임신과 비구니 첩 사건은 본질이 거세된 채, 권신 한탁주 일파가 도학을 말살하기 위해 꾸며낸 흑색선전으로 공식화되었습니다.
1. 침묵의 카르텔과 '사문난적' 프레임
조선의 학자들은 주희의 추문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것 자체를 불경(不敬)으로 간주했습니다. 만약 누군가 《송사》의 기록을 근거로 주희의 도덕성을 의심했다면, 그는 즉시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
[비판] 주희가 스스로 올린 비굴한 사죄문인 **'수죄표(受죄표)'**조차 조선에서는 "대인을 위해 몸을 낮춘 성자의 지혜"로 둔갑했습니다. **"개처럼 기어서라도 살려달라"**는 비굴함은 '권도(權道, 상황에 따른 방책)'라는 화려한 수사 뒤로 숨겨졌습니다.
Ⅲ. 텍스트 조작의 대물림: "글자를 고친 것은 깊은 뜻이 있음이라"
주희가 《태극도설》에서 **'자(自)'**와 **'위(爲)'**를 도려낸 사건에 대해, 조선의 학자들은 그것이 조작임을 알면서도 ‘스승의 결단’으로 찬양했습니다.
1. 억지 해석의 계승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주희의 조작된 구절인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을 해석하기 위해 수백 권의 책을 썼습니다. 원전이 조작되었음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의 학문적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
[박세당의 고발] 서계 박세당은 바로 이 지점을 찔렀습니다. 그는 주희가 경전을 멋대로 해석했다고 비판했다가 노론 세력에 의해 사상적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
[비판] 주희의 거짓을 지키기 위해 조선의 참된 지성들이 희생된 것입니다.
⚖️ 결론: 500년 역사 세탁이 낳은 ‘위선의 공화국’
조선 성리학자들이 주희의 위선을 가리고 미화한 결과, 대한민국은 여전히 그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며느리를 범하고 비구니를 탐하며 권력 앞에서 비굴했던 중국인 위선자를 ‘완벽한 인간’으로 설정해 놓으니, 그를 따르는 자들 역시 **‘겉으로는 도덕, 뒤로는 탐욕’**이라는 주희의 행동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를 폐지하고 주자학적 근본주의를 타파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것은 500년간 이어진 조직적인 '역사 세탁'과 '지적 기만'을 멈추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조차 문화대혁명으로 쓰레기통에 버린 그 위선의 찌꺼기를, 우리는 언제까지 성스러운 유산이라 착각하며 살 것입니까?
이제 성인의 가면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이 대륙의 끝자락에서 신음하던 우리 지성을 해방시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