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 타이쿤
- 조회 수 7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평등하다
공산주의 사회가 인간 지옥인 이유
ㅡ공산주의의 본질은 “평등”이 아니라 “절대권력”이다
공산주의는 겉으로는 “평등”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의 공산주의는 늘 똑같은 결말로 끝났다. 국민이 아니라 공산당이 국가 위에 서는 구조, 그리고 그 구조가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폭력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가 인간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 이유는 단순하다. 법이 아니라 당의 의지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1. 공산당이 국가 위에 서는 순간, 법은 죽는다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법이 권력을 묶는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공산당이 국가보다 상위에 존재한다.
즉, 국가는 껍데기이고 실질은 “당”이다.
법은 국민을 위한 규칙이 아니라, 당의 통치 도구로 전락한다.
이 구조가 만들어내는 핵심 결과는 단 하나다.
👉 법이 기준이 아니라, 당의 기분이 기준이 된다.
2. “수령의 한 마디”가 헌법을 초월하는 사회
공산주의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권력은 제도가 아니라 수령의 언어다.
수령이 “이게 옳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법률이 되고 판결이 되고 처벌이 된다.
-
어제는 애국자였던 사람이
-
오늘은 반동이 된다
-
내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공포다.
법이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국민을 사냥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3. 예측 불가능한 사회는 곧 “공포의 사회”다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이상도 아니다.
예측 가능성이다.
-
내가 열심히 일하면 보상이 있는가
-
내가 말하면 처벌받는가
-
내가 침묵하면 안전한가
이 최소한의 계산이 가능해야 사회가 굴러간다.
그런데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법”이 아니라 “당의 필요”가 기준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다.
오늘 충성해도 내일 숙청당할 수 있다.
오늘 침묵해도 내일 “침묵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을 수 있다.
결국 사회 전체는 하나의 심리 상태로 통일된다.
👉 공포.
공포가 지배하는 공간,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4. 모두가 감시자가 되는 순간, 인간관계는 파괴된다
공산주의 체제는 국민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감시를 시스템화한다.
문제는 감시가 단순히 경찰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
이웃이 이웃을 감시하고
-
동료가 동료를 밀고하며
-
가족조차 서로를 의심한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면
사회는 공동체가 아니라 감옥이 된다.
공산주의는 국민을 단결시키는 체제가 아니라
국민을 서로 적으로 만드는 체제다.
5. 1인 독재는 필연이다: 공산주의는 권력 집중을 운명처럼 낳는다
공산주의는 구조적으로 권력을 분산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도 통제하고
언론도 통제하고
교육도 통제하고
사상도 통제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통제는 결국 “누가 결정하느냐”로 귀결된다.
그리고 결론은 늘 똑같다.
👉 최종 결정권자 = 수령 1인.
이 체제에서 국민은 시민이 아니다.
국민은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독재자의 재산으로 취급된다.
6. 공산주의 사회의 인간은 “노예”가 된다
노예의 특징은 단순하다.
-
내 삶의 방향을 내가 정하지 못한다
-
내 미래를 내가 설계하지 못한다
-
내 말이 내 것이 아니다
-
내 재산이 내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은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흡수되고,
국민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짓밟힌다.
결국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체제 유지용 부품이 된다.
7. 인간 지옥의 정의: “살아있지만 자유가 없는 삶”
공산주의는 단순히 가난한 체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인간에게서 가장 본질적인 것을 빼앗는다.
-
선택할 자유
-
말할 자유
-
도전할 자유
-
실패할 자유
-
떠날 자유
그 모든 자유를 박탈한 뒤,
국민에게 남는 것은 하나뿐이다.
👉 “살아남기 위한 복종.”
그렇다면 결론은 명확하다.
공산주의 사회는
모든 사람이 독재적 1인 도살자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회다.
그리고 모두가 노예로 살아가는 사회는 인간 지옥이다.
8. “평등”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최악의 함정: 절대권력의 탄생
공산주의는 늘 달콤한 단어로 시작한다.
그 대표가 바로 **“평등”**이다.
겉으로는 모두를 똑같이 대우하자는 정의로운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평등을 “실현”하려는 순간, 반드시 따라오는 전제가 있다.
“평등을 이루려면, 평등하게 배분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평등한 배분을 만들려면 결국 누군가가 모든 자원을 통제해야 한다.
즉, 평등을 위한 배분을 위해서는 절대 권력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된다.
그리고 그 절대 권력이 생기는 순간, 평등은 사라지고 인간은 노예가 된다.
평등이라는 말은 결국 이렇게 변질된다.
-
“평등을 위해 재산권을 제한하겠다.”
-
“평등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겠다.”
-
“평등을 위해 성공한 자를 처벌하겠다.”
-
“평등을 위해 불평등한 생각을 금지하겠다.”
결국 평등이라는 단어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국가”라는 이름의 절대권력에게 위임하도록 유도한다.
즉 공산주의의 숨은 목적은 평등이 아니라,
👉 평등이라는 구호를 이용해 절대 권력을 정당화하고, 모든 인간을 노예화하는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결론은 더욱 잔혹하다.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절대권력이 필요하다는 논리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왜냐하면 평등을 위해 권력을 집중시키는 순간, 그 권력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존재는 누구인가?
바로 “평등을 배분하는 자”다.
결국 평등이라는 개념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
세상에 완전히 평등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평등이라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정의가 아니라 거짓 약속이며,
자유가 아니라 노예화를 위한 논리 장치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 능력주의를 증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등이라는 거짓 개념을 유지하려면,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단어,
👉 **“능력”**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능력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순간, 평등은 무너진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능력주의를 “악”으로 몰고
그 자리에 “평등”이라는 신화를 심는다.
결국 사람은 평등을 믿는 순간부터
이미 자기 자유를 스스로 포기한 상태가 된다.
평등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 사람은 “평등을 실현한다는 명목의 절대권력”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공산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평등을 위해 너의 자유를 내놔라.”
그리고 사람들은 속는다.
하지만 그 순간 이미 늦었다.
평등을 입에 올리는 순간부터,
인간은 이미 평등이라는 이름의 족쇄에 묶인다.
그러니 누군가의 노예가 되지 않고 한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당신의 입에서 평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옵리지 말아야 하고
평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절대권력의 노예로 만들어서
돈도 벌고 권력도 누리고 싶은 악질적인 삐끼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9. 평등을 외치는 자는 악마의 삐끼이다.: 그들은 노예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노예가 되지 않고,
한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 당신의 입에서 ‘평등’이라는 단어를 제거하는 것이다.
평등이라는 단어가 모순인 이유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평등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즉 평등이라는 단어의 단어 외적 의미는 자신보다 잘 난 사람에 대한 증오인 것이다.
평등이라는 정치 구호를 외치는 사람은 자신보다 잘 난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증오를
겉으로 아름답게 들리는 평등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불을 지펴
인간을 증오 덩어리, 살인 기계로 만들려는 것이다
평등은 듣기에는 아름답다.
그러나 현실에서 평등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평등을 말하는 자가 배분권을 움켜쥐고,
그 배분권이 절대권력이 되고,
그 절대권력이 모든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
즉, 평등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자유의 파괴”를 전제로 깔고 있다.
그리고 이 기만을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요약한 문장이 있다.
바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농장(Animal Farm)』에 나오는 명언이다.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이 문장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평등이라는 단어가 가진 본질적 모순과 악마성을 폭로하는 판결문이다.
평등을 외치는 순간, 반드시 계급이 생긴다.
그리고 그 계급은 늘 이렇게 구성된다.
-
평등을 강요하는 자 = 지배자
-
평등을 강요받는 자 = 노예
결국 공산주의가 말하는 평등은
자유의 확대가 아니라 자유의 제거다.
평등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자유로운 능력 발휘를 가로막고,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끌어내려
절대권력 아래에서 통제 가능한 노예로 만드는 장치다.
즉 공산주의가 말하는 평등은 천국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1인 악마의 평등한 노예로 만드는 평등지옥이다.
👉 남의 자유를 팔아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악질적인 삐끼꾼.
그러므로 평등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단순히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당신의 자유를 제한하고, 당신의 능력 발현을 막으며,
나아가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절대권력의 노예로 만들어
자신은 그 위에서 돈도 벌고 권력도 누리려는 자다.
다시 말해, 평등을 외치는 자는 대부분 이런 인간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등은
가난한 자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능력 있는 자를 묶어버리는 족쇄이며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마취제다.
평등은 정의의 언어가 아니다.
평등은 노예 계약서의 첫 문장이다.
그리고 인간은 평등을 믿는 순간부터
스스로 노예가 되기로 동의한 것이다. ⚔️🔥
결론: 공산주의의 본질은 “평등”이 아니라 “절대권력”이다
공산주의는 약속한다.
평등을, 정의를, 노동자의 천국을.
하지만 현실의 공산주의는 늘 같은 모습으로 끝난다.
-
공산당이 국가를 삼키고
-
수령이 공산당을 삼키고
-
국민은 수령의 노예가 된다
공산주의가 인간 지옥인 이유는 거창한 이념 때문이 아니다.
법이 무너지고, 예측이 사라지고, 공포가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끝은 늘 같다.
👉 한 사람의 말이 모든 사람의 목숨을 결정하는 사회.
그것이 공산주의다. 🔥
당신이 평등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계급 철폐를 말하는 순간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가장 불평등한 상황, 악마적인 계급 독재, 어떤 반대도 허용되지 않고 인간에 대한 무제한적인 합법적 도살이 정당화되는 인간지옥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악마의 주문을 당신 입으로 외치는 것이 되고 이는 당신의 영혼 깊은 내부에 가장 잔인하고 추악한 살인 마귀를 불러들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