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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칼럼] 약탈의 미학에서 노예의 길로: 하이예크가 경고한 '불로소득' 선동의 끝

 

선의로 포장된 지옥으로의 초대

 

맑스가 고율 누진세를 통해 사유재산 폐지의 '기술적 설계도'를 그렸다면, 프리드리히 하이예크는 그의 저서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통해 그 설계도가 도달할 '철학적 파멸'을 경고했다.

 

오늘날 투자 수익을 '불로소득'이라 부르며 국가가 이를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의로운 분배처럼 보이지만, 하이예크의 눈에는 그것이야말로 자유 시민을 국가의 가축으로 전락시키는 **'노예화의 서막'**이었다.

 

1. 경제적 통제는 곧 삶 전체의 통제다

 

하이예크는 "경제적 자유가 없는 곳에는 개인의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 프레임의 함정: 공산주의자들은 투자의 결실을 '불로소득'으로 규정함으로써, 국가가 개인의 경제적 성패를 심판할 권한을 갖게 만든다.

  • 노예화의 경로: 국가가 "이 소득은 정당하고, 저 소득은 불로소득이니 환수하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개인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기획할 능력을 상실한다. 리스크를 감수할지, 자산을 어디에 투자할지를 국가의 허락(세제와 규제)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개인의 모든 행동 양식을 국가가 결정하는 전체주의로 흐르게 된다.

 

2. '사회 정의'라는 가짜 이정표

 

하이예크는 공산주의자들이 흔히 내세우는 '사회 정의(Social Justice)'라는 용어를 **"가장 치명적인 사기"**라고 비판했다.

 

  • 시기심의 제도화: 투자 리스크를 무시하고 5억의 수익에만 분노하는 대중의 시기심을 '사회 정의'라는 말로 포장할 때, 정치는 약탈의 도구가 된다.

  • 도덕의 타락: 하이예크가 지적했듯, 스스로 리스크를 책임지는 독립적인 개인은 사라지고, 오직 국가의 배급과 타인의 재산을 빼앗는 정책에 기생하는 무력한 대중만이 남게 된다. 이것이 하이예크가 우려한 도덕적 황폐화이자 노예의 심성이다.

 

3. 지식의 결함과 국가의 오만

 

하이예크의 '지식의 문제(Problem of Knowledge)' 이론에 따르면, 시장의 복잡한 리스크와 보상 체계를 국가가 완벽히 파악하여 '적정한 수익'을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오만한 설계자: 10억 투자자가 감내한 정신적 고통과 미래 가치에 대한 통찰을 무시한 채, 결과값만을 '불로소득'으로 재단하는 것은 국가의 치명적 자만이다.

  • 결과: 이러한 오만한 통제가 계속될 때 시장의 신호등은 꺼지고, 경제는 마비된다. 하이예크는 이 과정이 결국 경제적 파탄을 넘어 정치적 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증명했다.

 

결론: 예비 강도들의 선동을 멈추는 법

 

맑스가 제안한 '고율 누진세'가 약탈의 칼날이라면, 하이예크가 경고한 '노예의 길'은 그 칼날이 도달할 절벽이다. 투자를 비난하고 리스크의 결실을 가로채려는 자들은 단순히 세금을 더 걷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의 선택권을 뺏고, 당신의 미래를 국가의 통제 아래 두려는 현대판 노예주들이다.

 

우리는 '불로소득'이라는 선동적 용어 뒤에 숨은 시퍼런 시기심과 독재의 발톱을 보아야 한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개인의 용기를 존중하고, 사유재산권을 생명처럼 수호하는 것만이 우리가 노예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 유일한 방책이다. 헌법적 가치와 자유 시장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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