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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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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칼럼] 위학(僞學)의 부활: 주희의 비굴한 항복은 어떻게 ‘성자의 순교’로 둔갑했나
주희는 죽기 직전까지 권력 앞에서 무참히 깨진 패배자였습니다. 그가 남긴 사죄문은 학자로서의 파산을 선언한 문장들이었지만, 그가 죽고 난 뒤 정치적 지형이 바뀌면서 이 '파산 선언'은 기묘한 방식으로 세탁되기 시작합니다.
Ⅰ. 권력의 교체와 ‘정치적 성인’의 필요성
주희가 죽고 난 뒤, 남송 조정은 금나라의 압박과 내부 분열로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때 집권 세력은 민심을 수습하고 지배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강력한 **‘정신적 지주’**가 필요했습니다.
1. ‘위학(僞學)’의 해금과 관학(官學)화
주희를 탄핵했던 한탁주 일파가 정계에서 축출되자, 새로운 집권 세력은 한탁주가 ‘위학’이라 규정했던 주자학을 역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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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세탁] 주희가 올린 비굴한 사죄문은 "소인배들의 겁박 속에서 도(道)를 보존하기 위한 성인의 고육지책"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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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道之將行也, 命也. 熹之受辱, 乃道之受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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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도가 장차 행해지는 것도 천명이요, 주희가 치욕을 당한 것은 곧 도(道)가 수난을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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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주희의 개인적 비겁함이 '유교적 도(道)'의 수난으로 격상되면서, 그의 모든 허물은 성스러운 희생으로 둔갑했습니다.
Ⅱ. 몽골(원나라)의 지배와 주자학의 생존 전략
주자학이 진정한 ‘괴물’로 부활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민족인 원나라(몽골) 치하에서였습니다. 몽골 통치자들은 한족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엄격한 위계질서와 복종을 강조하는 주자학의 **‘교조적 성격’**에 주목했습니다.
1. 지배 도구로서의 재발견
몽골은 주자학을 과거 시험의 표준 교재로 채택했습니다. 이때부터 주자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출세를 위해 반드시 외워야 하는 **‘지배의 공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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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주희가 원전을 조작하여 만든 논리들은 통치자들에게 매우 유용했습니다. "무극이 곧 태극"이며 "이치는 하나"라는 논리는 절대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Ⅲ. 조선, ‘세탁된 주희’를 수입하다
한반도로 건너온 주자학은 이미 중국에서 한차례 ‘역사 세탁’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조선의 학자들은 주희의 추문이나 비굴한 사죄문이 담긴 기록보다는, 승리한 뒤 박제된 주희의 권위를 수입했습니다.
1. 기록의 선택적 수용 (체리 피킹)
조선의 사대부들은 주희의 인간적인 결함이 담긴 기록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했습니다. 만약 누군가 주희의 '수죄표(사죄문)'를 읽고 그의 진정성을 의심했다면, 조선의 주류 세력은 이를 '간신들의 날조'로 몰아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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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주희가 며느리를 범하고 비구니를 첩으로 삼았다는 기록은 **"성인을 시기한 소인배들의 모함"**이라는 한 문장으로 진압되었습니다. 진실보다 '명분'이 앞서는 조선식 주자학의 비극이 시작된 지점입니다.
2. 신격화의 완성
이황과 이이에 이르러 주희는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으로 격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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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朱子, 集大成者也. 萬世之師, 豈可疑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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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주자는 (학문을) 집대성한 분이다. 만세의 스승을 어찌 감히 의심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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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의심이 허용되지 않는 학문은 신앙이 됩니다. 주희의 위학 논란은 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철저히 매장되었습니다.
⚖️ 결론: 죽어서 산 위선의 유령
주희가 스스로 자신의 학문을 ‘위학’이라 부르며 목숨을 구걸했던 사건은 역사의 거대한 오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그 '오점 가득한 인물'을 성자로 부활시켰습니다.
부활한 주자학은 주희의 철학이 아니라, 주희의 이름을 빌린 권력의 칼날이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여전히 이 위선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사를 모시고 교조적인 예의를 따지는 것은, 800년 전 남송 조정과 원나라, 그리고 조선 사대부들이 합작하여 만든 **‘거대한 역사 조작극’**에 여전히 속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조차 문화대혁명으로 이 연극의 무대를 부숴버렸는데, 우리만이 여전히 낡은 극장에서 가짜 성인을 찬양하는 연극을 계속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이 허구의 막을 걷어내고 위선자의 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